강원중학교-H&H 2009. 5. 7. 19:58

영락이 녀석이...

오늘 청소를 하던 영락이 녀석이 제게 묻더군요...

'선생님, 저희들이 정말 아들로 보이세요? ...그냥 학생으로 보이지요?'

제가 가끔 학생들에게 '아들'하고 부르는 것이 신기해 보였을까요...학기 초 저희 반 학생들에게 선생님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1/10 쯤은 부모의 마음을 닮아 있다고 했습니다.

저희 큰 아이가 강중에 지원하지 않았는데 뺑뺑이로 강중에 입학하게 되어 마음의 준비도 없이 얼떨결에 큰 아이와 함께 큰 아이 친구들을 등교 길에 태우면서 함께 학교에 다녔습니다. 2 년 후 형과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오망불매 사이인 작은 아이는 당연히 강중에 지원하여 함께 다니고 있습니다. 큰 아이들의 친구이기에, 큰 아이가 나서지 않아도 큰 아이 대신 작은 아이를 챙겨 주는 큰 아이 친구들은 제가 가르치지 않았어도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작은 아이 친구들도 그 동안 가르치지 않았어도 작은 아이를 데리고 차도 함께 타고 짜장면도 함께 먹으면서 이래저래 눈도장을 찍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들어가면서 낯을 익혀 갔습니다. 연 초에 작은 아이는 피했어도 작은 아이 학년을 맡게 되어 엄청 부담이 되었습니다. 한 편,아이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 잘 가르쳐야지' 하는 생각에 나름대로 준비도 열심히 했습니다.

담임 배정을 받고도 작은 아이에게조차 아이의 담임도 제 반의 학생들에 대해서도 함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작은 아이가 샐쭉해서 '엄마, 엄마는 우리 중학교 선생님 맞아?' 하더군요. 제가 함구하여도 이미 소식은 널리 널리 퍼져 나갔던 겝니다.

다음 날, 방학 중인데 출근을 했습니다.한 무리의 학생들이- 작은 아이 친구들이- 내게 다가와 '우리들은 선생님 반이예요" 하고 조잘대었습니다. 갑자기 맞닫드리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아이의 친구들이라 그런지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수 일 만에 익혔습니다. 제게 쉽지 않은 일인데요...

하나 둘씩 제가 누구 엄마라고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학생들은 '작은 아이를 온라인 게임에서 만났는데 게임을 해도 해도 너무 많이 한다'는 등의 작은 아이의 비화도 알려 주고 수업 시간에 괜스레 아이 이야기를 꺼내기도 합니다. '친근하다'는 표시겠지요. 오늘도 지각한 반 아이의 엉덩이를 찰싹하려는데 체육복 엉덩이에 작은 아이의 이름이 박혀 있었습니다. 작은 아이는 제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무개는 음악성이 뛰어나, 비트가 장난이 아니야' , '아무개는 농구를 잘해', '아무개의 수학 실력은 나와 차원이 다르게 높아' 등등... 이래저래 아들들과 학교 생활을 공유하게 된 아들들의 친구들이 '그냥 학생'일 수는 없지요.

오늘 전체 석차가 나왔습니다. 월요일 담임 시간에, 학기 초 약속대로 목표 등수에 골인한 친구들은 과자를 상으로 받고 2 학년 말보다 부진한 학생은 혼이 나겠지요. 저희 반에 전교 10 안에 든 친구들이4 명이나 됩니다.목표만큼 달성한 친구들이 10명. 그 중에서 30% 이상 향상자가 6 명, 100% 향상자가 2 명, 200% 향상자가 2 명이나 됩니다. 기쁘고 대견하여 앞 반 선생님을 찾아가서 자랑을 했습니다. 담임인 제가 이렇게 기쁜데 본인이랑 그 부모님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런데 성적 우수자도 많고 향상자가 이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저희 반은 6 개 반 중에서 5 등을 했습니다.-지난 진단 평가 때 1 등인 반이랑 평균 22 점이나 차이를 두고 꼴등을 했던 반 아이들은 그래도 꼴등을 면해서 좋은 가 봅니다. 시험 볼 때 마다 1 등씩 올라가면 됩답니다. 시험 첫 날 기술 가정을 1 등 해서 내심 혹시 대박이 나나 기대했는데.. - 성적이 떨어진 친구들도 12 명 입니다. 그 중에는 열심히 했는데 소득이 없던 친구들도 있습니다. 게다가 아직 철이 없는 친구들도 있고 공부는 하긴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우리 집 큰 아이가 생각나면서 마음이 짠해집니다..... 행복이 성적 순은 아니지만 모든학생들은 성적의 부담을 피해갈 수 없으니까요. 어떤 설문 조사에 의하면 학생들이 가장 기쁠 때는 성적이 올라갔을 때고 그 다음은 부모님이 사이가 좋고 가족이 화목할 때 랍니다. 우리 반 아들들의 성적에 따라 담임의 마음이 희비가 교차하니 담임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1/10 쯤은 부모의 마음을 닮아 있는 것, 확실합니다.

'영락아, 너희들이 네게 평범한 '그냥 학생'은 아니란다...."

5월 급식비 납부와 체험활동에 관한 안내문

오늘 5월 급식비 납부와 체험활동에 관한 안내문이 나갔습니다.

5월 급식비는 40,800 원 입니다. 15일까지 동봉한 지로 용지로 은행이나 행정실에 납부해 주시 면 됩니다.

그리고 체험활동은 2009년 6월 3일(수)~6월5일(금)에 실시합니다.

장소는 양양군 양양읍 조산리 해병아카데미, 숙소는 오션밸리 리조트입니다.

개학 전에 전 3학년 선생님들이 답사를 다녀 왔는데 숙소에서 바다가 그대로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습니다.아이들에게 좋은 추억 남길 수 있도록 모두 참여했음 좋겠습니다.

소요 경비는 100,000원입니다.

우선 월요일까지 체험학습참가동의서를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Cenema Paradiso(영화읽기) 2009. 4. 28. 15:36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우리들의 일글어진 영웅

한국: 119분 :1992 박종원

감독-박종원 출연-홍경인,고정인,최민식,신구,태민영

줄거리

40대의 한병태는 회사를 그만 두고 시작한 지 1년 된 학원 강사다. 사회 속의 권력, 암투에 적응하지 못하고 폐쇄된 학원 공간에서 소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병태에게 어느 날 국민학교 동창생인 황영수로부터 최 선생(신구 분)의 부음 소식을 듣는다. 그런 그에게 엄석대 급장이 온다는 소식이 그를 최선생 상가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그는 이제 30년전 5학년 2반을 회상하며 기차속에서 과거의 여행을 시작한다.

이 영화는 자신만만한 합리주의자인 나(한병태)와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 엄석대(홍경인)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나는 자유당 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때, 공무원인 아버지가 좌천되어는 서울 명문 국민학교에서 볼품 없는 시골 국민학교에 전학을 오게 된다. 화려했던 서울에 비해 소도시의 국민학교는 초라할 뿐이다. 우월함을 뽐내고 싶었던 병태는 담임 최 선생이나 반 아이들의 무관심 속에 내팽게쳐진다. 반장이요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는 엄석대와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나는 첫날부터 불편한 관계를 갖는다. 그는 일년동안 거의 아무에게도 저항받지 않고 학급을 지배해왔으며, 주먹 싸움, 성적 등에서도 남보다 월등하여 학급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이것이 생리에 맞지 않은 나는 그에게 도전하기 시작했고, 이기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결과 나에게 돌아온 몫은 '불량한 아이'와 '외톨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나날들이 계속될 무렵, 유리창 청소 사건을 계기로 병태는 석대의 권력 아래로 편입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나는 엄석대에게 복종을 하게 되고 그의 보호를 받아 편안하게 지낸다.
1960년, 새 학년이 시작되면서 김정원(최민식 분)이라는 젊고 유능한 선생님이 부임한다. 김선생은 아이들에게 정직, 진실, 용기에 대한 신념을 심어주려 노력한다. 김 선생은 석대의 위치를 눈치채고 모두 똑같은 친구임을 강조한다. 석대 역시 김선생이 자신을 의심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지금까지 세워온 왕국을 고수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결국 김 선생은 석대의 시험지 바꿔 쓰기를 발견, 처벌하고, 이에 반 아이들은 모두 석대의 비행을 늘어놓지만 병태만은 모른다고 대답한다. 석대는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뛰쳐나간 뒤, 밤에 교실에 불을 지르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병태는 점점 안정의 길을 걷게 된다. 병태는 다시 서울로 전학을 가고, 일류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시험과 경쟁 속에서 지내던 나는 그에 관한 기억들을 묻어버리고 만다. 그 후 나는 대기업을 떠나 대리점 경영을 하다가 망해서 실업자로 전락했을 때 석대가 이루었던 그 질서로 다스려지는 가혹한 왕국에 내던져졌음을 느낀다.
후에 사회인으로 성장한 한병태는 부조리한 현실에서 힘겹게 살아가며 엄석대에 대한 일종의 향수마저 느낀다. 석대는 어디선가 틀림없이 다시 급장이 되서 또 다른 반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병태의 뇌리를 스친다.

우연히 나는 피서길에서 수갑을 차고 끌려가는 석대와 마주치고 그에게서 어린 시절 우리들의 영웅이었던 석대의 모습이 아닌, 바로 그에게 복종하고 무력하기만 했던 그 때의 우리들 보게 된다. 나는 그 날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눈물을 떨군다.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2&dir_id=12&eid=GQlhT7fTKdlJAMJZG89bhdvk7L4pb96L&qb=7Jqw66as65Ok7J2YIOydvOq3uOufrOynhCDsmIHsm4U=&enc=utf8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BF%EC%B8%AE%B5%E9%C0%C7+%C0%CF%B1%D7%B7%AF%C1%F8+%BF%B5%BF%F5&sm=top_sug&fbm=1 참조

영화가 암시하는, 그리고 당시 배경이 되었던 3.15 부정 선거와 4.19 혁명은?

3월 15일 선거에서 대통령 이승만은 12년간 지속된 장기집권체제를 연장하고, 승계권을 가진 부통령에 이기붕을(李起鵬)을 당선시키기 위하여 대규모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전국적으로 유령유권자 조작, 4할 사전투표, 입후보 등록의 폭력적 방해, 관권 총동원에 의한 유권자 협박, 야당인사의 살상, 투표권 강탈, 3~5인조 공개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부정개표 등이 자행되었다. 그 결과 자유당 후보의 득표율이 95~99%에 이르렀으나 하향조정하여 이승만 963만 표(85%), 이기붕 833만 표(73%)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3월 15일 마산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 시위진압 도중 경찰의 실탄발포로 최소한 8명이 사망하고, 72명이 총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어 4월 19일 대규모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결국 4월 25일 대통령 이승만이 하야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고 12년간에 걸친 장기집권을 종식시켰다.

초기에는 일반적으로 혁명(革命)으로 규정하여 이를 4월혁명, 4·19혁명, 4·19학생혁명, 또는 4·19민주혁명 등으로 불리었으나 5·16군사정변 이후 이를 의거(義擧)로 규정하여 일반화되었다가 문민정부(김영삼정부)가 들어서면서 혁명으로 환원되었다. (두산백과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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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출문제 3학년 사회 2008년 1학기 중간고사

기출문제 (3학년 사회 2008년 1학기 중간고사) 올려 둡니다.

참고하시고 시험 대박나세요.

1240387767_기출문제 사회 3학년 2008년1학기 중간고사.hwp